The force that through the green fuse drives the flower / Drives my green age; that blasts the roots of trees / Is my destroyer. / And I am dumb to tell the crooked rose / My youth is bent by the same wintry fever….by Dylan Thomas
스티브 잡스가 NeXT와 Pixar라는 두 회사를 붙잡고 인생 역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사이 잡스없는 애플에선 무슨일이 벌어지고있었을까란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잡스가 공식적으로 애플을 떠난 해는 86년. 되돌아온 해는 97년. 이 10년사이 지구촌엔 전방위적인 “디지털 쓰나미”가 몰려왔다. 애플 신화를 모방한 무수한 벤처 기술 업체들의 거품과 신데렐라 성공 스토리가 펼쳐졌고 사업가와 소비자 모두 컴퓨터 세상을 환영했다. 컴퓨터는 불완전했지만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기 충분했다.
IT 역사가들에게 비쳐진 스티브 잡스는 그야말로 극과극을 오가는 평가를 받아왔다. 최근 아이폰/아이패드의 성공과 싯가총액 최고의 실리컨 벨리 기업으로 등극한 애플의 반전드라마 때문에 잡스에 대한 가시돋힌 공격들이 사라지긴 했다. 하지만 30년전 잡스는 화려한 언변의 실리콘 벨리 록스타이자 동시에 영락없는 “앙팡 테러블”이었다.
이같은 측면은 잡스의 매니지먼트 스킬의 일부이기도 하다. 오만방자에 극악무도한 성격의 소유자로 직원들에겐 두려움과 카리스마의 존재로 느껴졌을게 분명하다.
85년 가을 스티브 잡스는 인생 최악의 시기를 향하고 있었다. 자기가 세운 회사로부터 쫓겨난 그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배신감과 갈기갈기 찟겨진 자존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애플 컴퓨터 설립 9년만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그였지만 이제 겨우 30살.
어느날 저녁 팔로 알토 저택으로 잡스를 방문했던 월스트릿저널 여기자의 글이다. "넓디 넓은 거실에 티파니 램프와 의자하나…어둠을 벗삼아 마루바닥에 주저앉은 잡스의 눈에선 역전 드라마에 대한 상상의 나래가 반짝이고 있었다." 잡스의 감정상태를 이보다 더 잘 보여준 글이 또 있을까. 분한 마음과 고독속에서도 "새로운 컴퓨터 회사를 만들어 세상을 놀래키겠다"는 말을 곱씹던 잡스였다.
지난주 4월1일은 만우절. 촌철살인의 조크로 가볍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날이지만 적어도 지구상의 한 사람만은 그럴수 없는 날이다.
도박 천국 네바다주에서 라스베가스나 리노도 아닌 파럼프라는 썰렁한 소도시의 구질구질한 카지노에 틀어박혀 하루를 소일하는 론 웨인(77). 요즘엔 특히 더 이날이 싫다. 35년전 만우절 그는 20대 초반의 두 젊은이와 함께 신생 컴퓨터 회사를 창업했다. 당시 8백달러를 투자하면서 10%의 지분을 가졌던 웨인은 12일 만에 투자금을 회수하고 회사를 떠난다. 자금도 없이 컴퓨터를 개발하겠다는 두 젊은이의 야심이 무서웠던게 아니라 겂도 없이 대출부터 받아 사업하겠다는 발상에 가슴이 내려앉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운명의 여신은 일생일대의 신중한 결정을 내린 웨인의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만우절만 되면 웨인과 함께 회자되는 말이 바로 “What if?”다. 웨인이 포기한 10%의 지분을 지금 싯가총액으로 환산하면 약 3백억달러. 그가 포기한 회사는 지구촌 최고의 테크회사 애플 컴퓨터. 당시 그와 파트너 관계였던 창업자는 바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다.